무리한 선교활동 재고되어야 마땅

직접쓴칼럼 2007. 9. 4. 08:30
아프칸 피랍민들의 잘잘못을 따지는 네티즌들의 논쟁이 뜨겁습니다. 정치적인 문제냐, 종교적인 문제냐를 놓고 개신교 진영과 일반 국민들 사이의 논쟁은 서로가 합당한 이유를 내세워 이번 피랍민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아프칸이 전시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릎쓰고 봉사활동을 떠난 이들의 용감성은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이와 다른 의견으로는 결과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피랍사태로 인한 국내외적으로 그 파장이 너무 크다는 데 잘못의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급진성향의 개신교도들 무리한 선교활동 강행

개신교측 내부의 자성의 목소리도 들리고 있으나 일부 급진성향의 사람들은 선교활동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가에 피해를 주지 않고 개신교 내부의 위기상황 대처 메뉴얼에 따라서 향후 발생하는 이러한 사태에 대비를 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선교활동의 지속성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의 주장대로 되면 가장 좋겠지만 일이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개신교 내부힘에 의해 문제 해결이 힘들경우 이번 사태와 동일하게 정부가 나서야 된다면 이번일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아프칸은 미국의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이 무너졌고 새로운 정부가 구성되었습니다. 개신교의 아프칸에서의 선교활동은 탈레반측 입장에서 볼 때 신 정부의 당위성을 보장하는 것으로 비쳐지므로 상당히 신경을 곤두세우는 상황입니다.

제2, 제3의 아프칸 피랍사태 발생 가능성

사람에게 있어서 약함이 비쳐지면 항상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아프칸에서의 우리나라의 위상이 많이 약화되었으므로 그들은 제2 또는 제3의 아프칸 피랍사태를 일으킬 지 알 수가 없지요.

그런데도 일부 개신교도들의 억지같은 선교활동을 계속해서 강행한다면 정부는 물론 국민들의 비난을 면치못 할 것입니다.

개신교 선교활동 방향 전환 필요

선교활동이란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이 원하는 하나님 세상을 만드는게 주목적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일방적인 선교활동은 원하지 않는 사람들로 부터 공격받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국내에서 일고 있는 반 기독교 정서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강요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말씀과 교리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교회를 찾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저기서의 길거리 선교활동 그리고 가가호호 방문하는 선교활동 보기 좋질 않습니다.

좋으면 오지말라고 해도 가게됩니다. 싫으면 오라고 해도 가질않게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지요. 그러면 좋은지 싫은지를 가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 수가 있냐고 항변할런지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이 개신교측의 과제입니다.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게 선교활동을 전개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개신교의 교세확장에 있어서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어릴적 방학때 동네에 있는 교회 다녀보지 않은 친구들 없을 겁니다. 저도 역시 다녔으니깐요. 그 때는 '즐거운 여름 성경학교' 프로그램을 만들어 동네 어린친구들을 불러 모았지요. 먹을것이 많이 부족했던 어린시절이라 교회에 가면 맛있는 과자를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많은 어린이들이 너도 나도 교회로 향했던 거지요.

방학때 그렇게 열성적으로 다녔던 친구들도 자라면서 하나둘 교회를 멀리하게 되더군요. 저역시도 마찬가지지요. 전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개인의 가치관과 사고가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선택의 결정을 하게 되었던 거지요. 그러한 선택의 결정이 옳고 그른지의 판단은 물론 자신의 몫이지요. 후일에 가서 생각을 바꾸게 될런지도 모릅니다.

강요된 종교활동은 오래가질 못합니다. 자신이 깨쳐야 합니다. 자신이 필요에 의해서 찾게 됩니다. 인간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완전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자신의 나약함을 느끼고 자신의 힘만으로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견뎌내기 힘들 때 자연스럽게 찾게 될 것입니다. 물론 반드시 교회를 찾는 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석방조건이 석연치 않은 이유는 뭘까?

표면상으로 비쳐지는 이번 피랍민들의 협상 조건은 일방적인 탈레반의 선심으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물론 두명의 희생자를 남긴 안타까운 일은 일어났지만 그래도 21명이라는 인질을 무사히 풀려나게 해 준것에 대해서는 좋은면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서로가 알리지 못하는 중대한 조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들이 단순한 두 가지 조건 1. 아프칸에 주둔하고 있는 동의.다산 부대의 연내 철수, 2. 아프칸에서의 선교활동 중단 및 NGO들의 철수 등의 약속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면서 피랍 인질들을 석방해 주었다는 사실이 웬지 믿음이 가질 않네요.

만약 이외의 다른 별도  구두 약속이 있었다면 협상의 성과를 자축하기는 무리가 따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한 약속 모두가 국민 개개인들에게 부담지워져야 하는 짐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깐요.

무리한 선교활동은 자제되어야 합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겠지만 기독교인들의 무리한 선교활동 자제해 주세요. 오기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인들만 살고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다시한번 피랍 인질 사태가 재연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사고 발생에 대해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제일 좋은 방책입니다.

정부도 강력한 제제를 통한 무리한 선교활동을 금지시켜야 겠습니다. 강력한 법 개정도 필요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또다시 아프칸 피랍 사태와 같은 일로인해 국력을 낭비하는 어리석은 행위를 막기위해서는 국민 개개인 스스로가 위험을 인식하는 수준을 제고시켜야 할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설정

트랙백

댓글

당신은 이 시대의 진정한 순교자이다.

직접쓴칼럼 2007. 7. 31. 14:00
14일째 접어들면서 아프가니스탄 피랍민에 대한 관심과 주의가 식어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피랍민들도 지쳐가고 가족들도 지쳐가고 시간이 지나가면 갈수록 체념상태로빠져들게 될 것이다. 탈레반측의 협상에 대한 신뢰감이 줄어들면서 이들이 과연 우리 동포들을 무사히 석방해줄지도 의문이다. 그들의 목적달성을 위해서 그들을 도우러 자신의 안위는 생각치도 않았던 애궂은 우리 국민들을 도구로 이용하는 탈레반들의 정신세계를 해부해보고 싶어진다.

또 한 명의 희생자 발생

아침부터 들려온 비보 배형규목사에 이어 또 한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희생자는 경남이 고향인 심성민씨다. 그는 경상대를 졸업하고 ROTC를 중위로 전역한 후 IT업계에 종사하다 농업에 뜻을 두고 대학원에서 학업중이었던 것으로 언론은 전하고 있다.

정부의 특사파견 및 여러 창구를 통한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도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는 점차 미궁으로만 빠져들고 있다. 인질 살해 시각을 점차 줄이겠다고 협박하며 자신들의 협상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탈레반 무장세력들을 설득할 묘안이 대체 무엇일까?

탈레반 근친결혼으로 맞교환 죄수들이 모두 친.인척

탈레반 무장세력들이 내세우는 협상카드는 인질범과 자신의 세력인 죄수들과 맞교환을 하자는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그들은 결혼풍습인 근친결혼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근친결혼이 대부분인 탈레반은 현재 감옥에 감금되어 있는 죄수 대부분들이 자신들의 혈족으로 동료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게 때문에 그들은 협상에 있어서 그 어떤 협상카드 보다도 자신들의 혈족들을 석방시키는 것이 절박한 것이다.
 
협상 장기화에 대비해야

인질사태 초기에는 빨리 끝날 것 같은 분위기 였지만 탈레반의 행위로 보아서는 장기전으로 돌입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에서는 피랍민들이 현재 절실히 필요한 생필품들을 빠른 시간내에 공급해서 그들이 석방될 때까지라도 그 쪽 생활을 적응할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피랍된 국민들은 모두 종교활동을 통해서 그 누구보다도 정신수양이 잘 된 사람들일것이다. 이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자신의 의지력밖에는 없다. 고통을 받고 주는 주체는 자신임을 상기하면서 내가 고통을 받지 않는한 그 누구도 나에게 고통을 가할 수 없음을 잊지말기 바란다.

가족들의 건강도 염려된다. 보름 가까이 이어져온 협상시한 연장으로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감으로 휩싸여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으로 연로하신 부모님들의 건강상태 악화도 예상된다. 아무쪼록 부모님들도 당신들이 먼저 건강을 챙기셔야 고통받고 있는 자식들을 위해 무언가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여아 한다.

정부도 단기간에 사태가 해결할 것으로 믿고 추진한 피랍사태 관련 정책들을 장기화에 돌입했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탈레반 무장세력의 단기 협상시한 설정으로 단기 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협상의 실타래를 풀지 못한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아프가니스탄의 죄수와 인질 맞교환에 대한 부정적 반응에 대해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아프간 정부는 미국이 세운 정부이기 때문에 미국의 힘에 의존적일 수 밖에 없다. 적대국과는 절대로 협상을 할 수 없다는 강력한 외교정책을 표방하고 있는 미국의 외교정책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해결책도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심성민씨의 의로운 죽음 가슴속에 길이 남아

심성민씨의 의로운 죽음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가슴속에 길이 남아 당신이 이루지 못한 이땅의 비폭력 평화를 전파하는 힘이 될 것이다. 일신의 안위보다는 오로지 복음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당신은 이 시대의 진정한 순교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설정

트랙백

댓글

서울로 출장와 보니..

생활이야기 2007. 7. 25. 09:50
모처럼 울산 떠나서 서울로 출장왔습니다. 서울 온지가 2년 가까이 다 되어서 그런지 많이 변했습니다. 예전에 구로디지털역 근처에서 몇개월 생활했었는데 눈에 띄게 변한것 버스중앙차로가 생겼네요. 그러면서 버스타는 승강장이 도로 한복판으로 옮겨져 있네요. 누가 아이디어를 내었는지 괜찮은 것 같더라구요.

에구에구 작년 12월경에 버스중앙차로가 확대시행된 것 같은데 세계일보한테 한방 맞는 기사가 있네요. "버스 중앙차로 확대... 안전은 '뒷전'"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도 촌사람인 제가 느끼기에 예전보다 시간이 많이 단축된 것 같습니다. 물론 생각하지 못한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서울은 시골보다는 사람살기에 넘 정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하철을 한번 이용해 보니 웬 사람들이 어디서 이렇게 몰려 나오는지 우와~ 진짜 많네요.

아마 우리나라 인구의 4분 1정도가 서울에 산다지요. 그러다 보니 복잡한 건 당연한 사실이고 오래 살면 도심 생활의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 것 같네요. 한번씩 도심을 빠져 나가 스트레스 해소는 필수..

다들 휴가갈 준비는 잘 되어 가고 계시겠죠. 올 해는 동해, 남해 쪽으로 한바퀴 휙 도심이 어떨런지요.. 평상시에는 서울 도심을 빠져 나가 시골 정취를 만끽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데 휴가를 한번 이용해서 쭉 한바퀴 돌아보심이 어떨런지요.

짙푸르고 탁트인 수평선을 간직하고 있는 동해 앞바다를 보면 도심 생활로 꽉꽉 막혔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 줄겁니다.
남해의 수 천개의 섬들로 둘러싸인 고요한 바다를 바라다 보면 잠시나마 복잡한 현실세계를 떠나 명상가가 된 기분으로 인생을 다시한번 생각하면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가슴속에 담아 갈 수가 있을 것 같네요.
서해는 제가 몇번 가 보질 못해서 서해 바다를 딱 잘라 뭐라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출장와서 별의별 이상한 말만 주절주절 늘어놓네요. 집 떠나니 모든 생활이 불편함 투성입니다. 낯선 사람들, 낯선 건물들, 낯선 교통수단, 낯선 분위기, 낯선 언어 모든게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제일 기분이 꿀꿀할 때가 언젠가 하면 저녁 시간대 입니다. 해가 서쪽으로 갈랑말랑하는 그 순간 붉은 빛으로 물들인 저녁 하늘을 보면 집생각에 눈시울이 금방 촉촉해지지요. 다들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바삐 움직이는데 설렁한 숙소로 갈려니 발길이 옮겨지질 않아 근처 맥주집으로 향하는 심정 이해하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듭니다.

내일이면 벌써 울산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네요. 오늘 여기 저기 지인들 몇분께 연락해보니 다들 선약때문에 만나지 못할 것 같네요. 7시경 업무를 다 마치고 무작정 505번을 탔습니다. 출장지가 광명시 소하동인데 500번, 501번 모두 서울로 들어가긴 가던데 예전에 와서 505번 타본 기억에 그냥 탔습니다. 약속도 없고 그래서 무작정 505번 종점까지 가보자는 심산으로 버스를 타고서 서울 여기저기 구경했습니다. 금천구를 지나 영등포구, 동작구, 여의도쯤 오니 바로 옆에 KBS 방송국이 있네요. 저기 63빌딩도 보이구요. 드디어 한강도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여의도 옆에 있는 한강 지나는 다리인것 같은데 원효대교 맞는 것 같은데... 다리 건너니 바로 용산전자상가가 나오네요.

다시 예전에 같이 일했던 한 분이 퍼뜩 생각나서 전화를 했더니 광화문 근처에 사무실이 있는데 그쪽으로 오라서 해서 서울역 근처에서 버스를 내렸습니다. 서울역에서 광화문까지 거리가 얼마되지 않는다고 해서 구경도 할겸 도심 한 복판을 걸었습니다. 꽤 높은 건물들과 TV에서나 본 적이 있는 건물들이 여기 저기 눈앞에 있으니 신기하기도 하더라구요. 조금 걸으니 숭례문이 나오고 서울시청을 지나 광화문근처까지 오니 우리나라 대표적인 언론사 빌딩들과 외교통상부, 교보문고등 굵직굵직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건물들이 다 보였습니다. 언론사에서 세운 전광판에서는 각종 뉴스를 실시간으로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근처에서 예전의 동료를 만나서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 많이 주고 받았습니다. 하는일이 IT관련 일이라서 서울IT동향, 개인적인 전망, 향후 뭘해서 먹고살지에 대한 고민등 30분 정도 대화를 나누다가 시간도 늦고 해서 스타벅스 커피숍을 나섰습니다.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광화문역쪽으로 가는데 그 친구가 청계천 한번보고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길래 기왕지사 여기까지 왔는거 한번 보고 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청계천쪽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전경들이 여기 저기서 모습이 보이길래 어디서 시위를 하는 구나 생각했습니다. 조금 더 청계천쪽으로 가보니 노동자들이 모여서 집회를 하는 모습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파병반대국민행동 회원 300여 명이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한국군 철군을 요구하며 촛불 문화제를 열고있었습니다.
실제로 집회현장을 가보니 현장 분위기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쿵꽝쿵꽝 터질듯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민중가요 노래 소리에 몸속에서 흐르는 피의 용솟음을 느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친구가 걸음을 재촉해서 다시 집회 군중을 뒤로한채 청계천쪽으로 내려가는데 아니 "가는 날이 장날" 오늘은 청계천으로 내려가는 길을 개방하지 않네요.

할 수없이 다시 서울시청쪽으로 내려와서 2호선을 이용해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가 있는 서울대역 근처로 오니 도심이 조용하니 고향인 울산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슴을 느꼈습니다. 서울도 지역에 따라 도심 발전의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지방에서 생각할 때는 서울이라고 하면 모든 지역이 휘황찬란할 것같은 느낌을 받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2박 3일 출장 일정중에서 이틀이 지나가버렸고 이제 하루 일정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위험을 무릅쓴 선교활동 벌이는 이유

사회이야기 2007. 7. 22. 13:15
2001년 9.11 테러사태 이후 2001면 10월 8일부터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켜서 전세계 테러조직을 근절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그해 12월 6일 탈레반 정권은 탈레반 전사들에 대한 사면과 최고지도자 물라 모함마드 오마르의 안전보장을 조건으로 최후거점 칸타하르를 반탈레반 파쉬툰족에게 넘겨 주기로 합의하면서 사실상 항복하면서 탈레반 정권은 붕괴되었다.

아프가니스탄 분쟁의 역사

아프가니스탄을 '아시아의 각축장'이라고 부를 정도로 침략과 분쟁의 역사 현장이었다. 그렇다면 아프가니스탄에서 끊이질 않고 벌어지고 있는 분쟁의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외세의 침략과 개입을 들 수있다. 아프가니스탄은 고대로부터 동서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중동, 중앙아시아, 인도대륙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BC 2천년경 아리안족이 이 지역으로 이주하여 카불에 도시를 건설했고 BC 6세기 페르시아제국의 침입을 시작으로 하여 BC 4세기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공격하였고 BC 2세기 그리스인, BC 1세기 쿠샨인이 이곳을 지배하였다. 7세기 아랍인이 이곳을 정복하여 이 지역 주민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켰다. 이후에도 이란인, 몽골인 러시아 등이 침략했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외세의 개입이 본격화 되었다. 영국과는 세차례에 걸쳐 전쟁을 치렀는데 영국의 침공 목적은 인도에 대한 안정적인 지배와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전쟁에서 아프간의 끈질긴 저항으로 식민지화에는 결국 실패하고 외교권만 양도 받았으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제3차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외교권을 되찾아 완전한 독립을 이루게 되었다.

1979년 12월 소련군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수도 카불을 점령하였다. 소련군의 침공은 분열 되었던 아프가니스탄 사회를 통합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85년 이슬람반군이 연합하여 이슬람동맹저항운동인 무자헤딘을 결성 소련군과 게릴라전에 돌입하여 결국에는 소련군을 철수하게 만들고 반소련저항운동을 주도했던 무자헤딘은 소련군 철수 이후 다양한 종족과 종파로 분열되었고 이 과정에서 탈레반은 급부상하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독교인들이 위험을 무릅써고  선교활동을 벌이는 이유

정흥호씨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파키스탄의 관계와 선교전략" 논문 내용에 따르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은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가장 많은 무슬림들이 있으며
전체 인구 약1억 5천만 명 중 95% 이상이 무슬림들이다. 기독교는 공식적으로 약 1.7%로 집계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기독교인들이 약 3백만 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교가 밀접해 있는 중동권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나라들로서 중동권 선교활동을 위해서 강한 무슬림들이 영향권을 갖고 있는 이 두 나라에서 선교가 이루어지게 된다면 다른 이슬람권을 향산 선교의 가능성을 진단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라고 선교 전략의 가능성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이 지역에서의 선교의 전망에 대해서 "전쟁의 참상은 그 나라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고, 이는 오히려 복음을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사용하신것이다. 대략 3백만 명이 파키스탄으로 피난왔으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유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슬람은 그들의 마음에 추종할 만한 가치를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다. 이제 교회가 그들에게 선교사역을 시작해야 할 가능성을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이 땅에 추수할 일꾼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들은 전에 받아보지 못했던 사랑과 동정, 안전이나 사회의 기본적인 제도가 필요하다.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을 들어주고 그들의 요구를 보고 그들과 시간을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하다. 이 시기야말로 아프가니스탄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는 때가 된 것이다" 고 선교활동의 가능성을 진단하고 있다.

위험을 무릅쓴 선교활동은 그들의 종교적 신념이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제일 중요한 것이 복음전파일 것이다. 자신들의 교리를 널리 퍼트려서 기독교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온 세상에 가득차게 만들어 기독교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측면으로 생각해볼때 복음전파 대상지로서 현재 아프가니스탄만큼 좋은 지역이 없다고 그들은 판단하고 있다. 위험을 무릅쓴 그들의 선교활동은 개인적으로 최악의 사태가 발생해서 죽음을 맞이하더라고 이 땅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성스러운 죽음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모두가 위험지역이라고 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그들의 활동의 힘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외부자의 시각으로 볼 때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댈수 없는 그들만의 신념이다. 그들의 신념은 오로지 힘들고 병들고 나약한 사람들을 위해 정신적 구원을 실천해서 이 땅을 복음으로 가득찬 세상을 만드는데 있다.
   
[참고자료 : 아프가니스탄 분쟁(유달승저)]

북 & 디자인 - bookdesign.tistory.com -

설정

트랙백

댓글

피랍민을 위한 촛불집회

사회이야기 2007. 7. 22. 02:20
민주주의를 외치며 떠들던 단체들을 다 어디로 숨었나요? 이랜드 사태로 정신없는 줄은 압니다. 하지만 사안의 중요성으로 따져보면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는 피랍사태가 더 큰 것이 아닌가요? 왜 이번 납치사건은 당신들의 정치적 야욕을 불태우는 쓸만한 재료가 아닌가요? 이번 납치범들이 미국인이었다면 다들 광분했을텐데 아니어서 별로 목소리를 높일 가치가 없는 일인가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민주국가인 우리나라의 국민이 이역땅에서 피랍되어 있다. 그런데 어찌 그 많고 많던 사회단체들과 각 정당들의 피랍민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는 들을 수가 없으니 이 어찌된 일인지 개탄스럽다. 그들 눈에는 노동자들만 그들의 국민들로 인식되는거는 아닌지 의문스럽다. 그 노동자들은 바로 그들이 정치적야욕을 달성하는데 훌륭한 재료가 될수 있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면 지금 이순간에라도 당장 뛰어나가 피랍된 우리 동료 23명이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촛불집회를 열어야 하지 않나. 수시로 광화문 광장으로 뛰쳐나가 그들의 주장을 외쳤는데 이번에도 피랍 억류된 우리 동료들을 위해서 잠시나마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이념과 사상을 초월한 오로지 피랍된 우리동료를 구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대화합의 장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백의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정情'으로 똘똘뭉친 우리 민족이 어떡하다 이렇게 살벌한 민족이 되었는가? 36년간이라는 긴세월동안 나라를 되찾기 위해 똘똘뭉쳐 하나된 목소리를 외쳤던 우리 민족이었건만 어찌하여 그 고결하고 숭고했던 정신은 사라지고 자신들 집단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만 행동하는 이기주의적인 더러운 정신들만 이땅에 넘쳐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모두들 정치인들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 민족을 여러 갈래로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지역간, 계층간 수도 없이 많은 기준들로써 국민들을 분열시켰다. 자기 편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을 수도 없고 강건너 불구경하듯 한다. 우리편이 아닌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잘되는 것을 보질 못한다. 오히려 예전의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었던 순수한 마음씨가 좋았다. 때 묻지 않던 그시절의 그 국민들이 좋았다. 머리에 자기만의 사상과 이념으로 가득차 있어서 타인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는 이해와 관용을 베풀지를 못하는 독선에 빠져 있다.

우리가족중에 한명이 밖에서 누군가로 부터 공격을 당했다고 생각해보자. 그 때 기분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어떠하겠는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공격자를 지구끝까지라도 찾아가서 복수해 주고 싶은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아프가니스탄에 피랍되어 있는 23명은 바로 우리 국민들이다. 물론 내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리와 이념과 사상이 동일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민족이고 우리와 동일한 문화를 공유했었고 동일한 생활양식을 공유했던 우리 민족이다. 이번 일에 있어서 보다 차원 높은 접근이 필요하다.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충돌되면서 옥신각신 싸우고 헐뜯고 비방하고 하는 것은 다 좋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국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다들 중지를 모아서 해결책을 서로 논의하는 성숙된 사고를 가져야 한다.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그들이 고국으로 무사히 돌아오기를 촛불피워놓고 기원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자.

북 & 디자인 - bookdesign.tistory.com -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