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주머니속의 꼬깃꼬깃한 로또 한장

생활이야기 2007. 9. 5. 16:30
어제 울산 인근에 살고 계시는 어머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곰국을 끓여 놓았다고 가져가라고 하신다. 지난 일요일 어머님 생신에 갔다가 드린 돈을당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시고 늘 그래왔듯이 자식들을 위해 사용하신 모양이다.

그래서 어제 저녁 곰국을 가지러 부모님 댁으로 갔다. 아버님이 씻으시고 계셨다. 아버님은 올해 71살 되신다. 자식들이 별로 보잘것 없이 살아서 부모님께 아직 용돈을 넉넉하게 주지 못하는 관계로 아직까지 5톤 트럭으로 부산, 대구, 거창 등지로 매일매일 운송을 나가시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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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봄 일체 경비를 부모님이 부담하시고 떠난 가족여행지 경남 고성 공룡유적지에서

마당에는 빗방울이 흩날리고 있었다. 저녁을 같이 먹는데 아버님이 말씀하신다. "내일 비가 오면 큰일인데. 거창까지 짐싣고 가서 올때는 파렛트도 싣고 와야 하는데" 하시면서 걱정을 하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한곳이 아리면서 코끝이 찡해옴을 느꼈다.

살아 생전 부모님께 효도를 다해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무색할 정도로 부모님의 사랑만 받고 효도한번 제대로 못하고 있는 현재의 처지가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몇년 전 자식들 잘못으로 가지고 계시던 2층 짜리 주택을 다 날리시고 지금은 친척집 농장에 방한칸 지어서 살고 계시는데 그래도 자식들 원망하지 않으시고 앉으나 서나 자식 걱정이시다.

주말마다 들릴때면 손주 녀석들 주시겠다고 요쿠르트, 과자 등을 사놓으시고 기다리고 계신다. 어떤때는 운행 경비를 아껴서 어머님 몰래 차속에 숨겨 두셨다가 손주들 피자와 통닭 사주라고 내놓으시곤 하시던 아버님이시다.

일전에 우연히 아버님 바지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한 로또 한장을 발견한 적이 있다. 가끔씩 아버님은 농담으로 "얘들아 조금만 기다려봐라. 내가 로또에 당첨되면 첫째는 X억, 둘째는 X억, 셋째는 X억 줄께'라고 하시면 큰 소리로 말씀하시곤 하셨다. 가족들 모두는 농담으로 받아 들였는데 아버지는 정말로 그렇게 하시기 위해 로또를 구입하고 계셨던 것이다.

자식 봉양을 받으시면서 편안하게 사셔야 하는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자식들에게 도움을 주실려고 하시는 아버님의 깊은 사랑을 어찌 보답할 수 있을지.

내리사랑은 있어도 올리는 사랑은 없다는 말이 정말인가 보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 입장으로서 내 자식 위하는 생각보다 아버지 위하는 생각이 부족하니 이말이 틀림이 없는 모양이다.
 
앙상한 몸으로 지금 하고 계시는 일마저 못하게 되실까봐 항상 건강 걱정하고 계시는 아버지. 젊은 사람들도 옮기기 힘든 70kg ~ 80kg에 달하는 유류통을 거뜬히 옮기시고 계시는 아버지. 행여 당신 노환으로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실까 자나 깨나 걱정하고 계시는 아버지. 외식하러 가서는 자식들이 부담될까봐 가장 먼저 자리를 일어나셔서 계산하시는 아버지.

자식된 도리를 언제쯤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얼굴과 손에 깊이 파인 주름을 보면서 각오를 다져보지만 현실의 냉혹함은 어쩔수가 없으니 안타까움만 쌓여갈 뿐이다.

오늘 오전에 비가 많이 내렸다. 지금도 비가 흩날리고 있다. 지금쯤 거창에서 울산으로 내려오고 계실것 같다.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가슴으로 외치면 어쩌면 들으실 수도 있겠다.

"아버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저희들과 함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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